그... 저기, 안녕하세요?
제 소개를 좀 해보자면
"아, 그 카이스트 나온 애?"
저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이렇게 기억합니다.
뭐, 저랑 좀 더 친하다면 "기껏 카이스트 나와서 이상한 거 하러 간 애" 정도로 불러주는 사람들도 있겠군요.
아마 아직까지 제 인생 최대 업적이 명문대 졸업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네요.
사람들은 좋은 대학 나왔다고 하면 제가 살면서 공부만 한 줄 알더라고요. 원래 인생 업적이란 게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대변해주는 게 맞지만, 사실 전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보다 웃긴 걸 더 좋아했습니다.
4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가서 처음으로 본 시트콤이 Friends인데, 전 그 프로그램으로 인해 "소름이 돋는다"는 감정을 배웠습니다. 그때 극 중의 세련되고 재치 있는 유머는 가위 충격적으로 신선했거든요. 어린 저에게 그 정도의 감동은 인생을 바꾸기에 충분했고, 그 한 에피소드를 본 이후로 전 코미디물이란 코미디물을 수집하듯이 봐 재꼈습니다.
물론 대학교에 있을 동안에도 제 코미디 사랑은 식지 않았죠. 밥 먹을 때나 쉴 때, 자거나 깰 때도 제 옆에는 항상 스탠드업 코미디가 켜져 있었고, 동기들이 깔끔한 문제 풀이와 깊이 있는 연구 결과에 감동할 때 제 감동은 오롯이 머리맡에서 재잘대는 그들에게서 비롯됐습니다. 저에게 있어 “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?”라는 감탄사는 항상 코미디언들이 독점했죠.
사실 "코미디가 뭐 그렇게 대단하냐"라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진 못하겠습니다. 정작 코미디 작가로 진로를 바꾸고 난 뒤로는 코미디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도 지독한 애증으로 바뀐 상태고요. 셰익스피어에 의하면 영국에서는 고대 무기로도 쓰이는 게 "위트 (재치)"라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고, 어쨌든 코미디와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제일 많이 배운 건 "공감"이 아닌가 싶네요.
사실 장르와 관계없이 훌륭한 스토리는 관객이 예기치 못한 관점을 제공합니다. 하나의 관점에 너무 몰두해서 주변을 살피지 않는 이야기가 가진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죠. 진정한 스토리텔링은 모두의 견해를 탐색한 뒤에 내 지난 편견과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깨닫고 나서 시작됩니다.
코미디도 마찬가지입니다.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탐구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것 같아요.
"예상치 못하게 행동하라"
코미디의 기본이죠. 하지만 작가가 깨지고 부서지지 않으면 그의 작품은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.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이해하고,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들에 대해 생각한 후에야 좋은 코미디를 만들어 낼 수 있죠.
대학교 때 코딩을 전공으로 했던 이유도 컴퓨터랑 대화하는 그 행위가 스토리 텔링과 좀 닮아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. 코딩 창을 처음 켜서 컴퓨터에 무언가를 지시하려면, 이 아이는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기 때문에 기본부터 알려줘야 합니다. 그러려면 인간들이 직감적으로 받아들이는 추상적인 부분들도 체계적인 단계로 재구성해 줘야 하죠. 그 과정에서 제가 무의식적으로 넘겼던 부분들, 사실은 이해 못 했던 부분들까지 다시 되짚어가며 차근차근 설명해 줘야 합니다.
어찌 보면 저에게는 코딩도 인간의 편견을 부수고 공감력과 이해력을 기르게 하는 또 다른 훈련이었던 거죠.
"공감". 결국엔 코딩을 하고 있으나 남을 웃기고 있으나, 제 근본적인 의도는 그것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. 하지만 이 공감에 대한 원동력은 원래 코미디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거였죠. 그러니까 여태까지 사람들이 공대 너드라고 간주한 제 모습의 본질은 사실 항상 광대의 모습이었던 겁니다.
그래서 지금은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그냥 늘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. 제가 "공감"을 하고자 만들어 나가는 스토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정말 작은 깨달음이라도 줄 수 있다면, 그것 또한 세상을 바꾸는 일이니까요.
그리고 저는 세상을 바꾸고 있을 때, "카이스트 걔"가 아닌 "아, 그 웃긴 애"로 불리고 싶습니다.
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분명 "아... 자기소개 이렇게 쓰는 거 아닌데"라고 안타까워하실 수 있겠습니다만,
사실은 다양한 경험들과 인생 업적을 써야 하는 소개란에 마땅히 쓸 게 없어서
제 비전이라도 장황하게 적어봤습니다.
이 분야에서 제 정체성의 실체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 페이지를 찾아오신 거라면 다음 내용을 읽어주세요:
안녕하세요, 현재 NYFA에서 Screenwriting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.
현재는 휴학하고 유튜브에 웃긴 영상 좀 올리고 있습니다.
제 포트폴리오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.